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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개에서 100개에 달하는 끈 다발
각각은 1마일의 길이
땅 아래 3피트 깊이로 묻혀서
각자 별도로 분리된 시작이
또 각자 별도로 분리된 끝이
가로지르고
교차하고
직조하고
분리된 경로로 구불대며
모든 시작과 끝이 밖으로 드러난다
지표면 위로.[1]
[1] Barry Le Va, Network
눈 뒤가 조금 뻐근한 아침, 당신은 모닝커피에 얼음 하나를 넣습니다. 찻잔의 온도는 1도 내려가고 이로 인해 이제 세기 중반까지 산업화 이전의 온도보다 지구 온도가 2도 상승할 것입니다. 커피가 저절로 식도록 두지도 못할 정도로 성미가 급한 당신은 1도가 식은 커피를 입술에 대기도 전에 메일함을 열고 화면을 아래로 당깁니다. 각종 광고와 몇 가지 소식이 화면의 최하단으로 고정된 뷰포인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쏟아져 내려 잽싸게 상석을 꿰찹니다. 매일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매 순간 조금씩 지체된 아침을 맞이하며 이렇게 핑(Ping)을 받고 있습니다.
모든 클릭과 키 입력은 24시간 전원 및 냉각이 필요한 물리적 서버에 의해 백업되는 데이터 조각을 생성합니다. 전 세계 탄소 발자국의 2% 정도가 데이터 센터에서 발생합니다. 데이터 센터는 매년 성장하는 산업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데이터 센터에 약 1,800만 대의 서버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해가 떠 있는 시간 동안을 지루한 스크린 앞으로 쏟아붓기 위해 교통수단에 탑승합니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비교적 작은 스크린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지루한 스크린과 즐거운 스크린 사이에 다를 게 있다면 그건 크기에서 비롯된 차이에 불과합니다. 도시의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합니다. 당신이 탑승한 교통수단이 화석 연료의 시커먼 연기구름을 내뿜는 동안 당신은 핑을 받고 있습니다.
전 세계 인터넷과 모바일 트래픽의 1% 정도만이 인공위성을 통해 이뤄집니다. 나머지 99% 이상이 해저케이블을 통해 전송됩니다. 1998년까지는 인공위성 트래픽이 27%, 나머지 73%를 해저케이블이 차지했지만, 인공위성으로 국제방송을 중계할 때 위성 상태가 고르지 못해 화면이 정지하거나 끊기는 일이 자주 발생하자 다시 해저케이블이 선택되었습니다.
컴퓨터는 인간이 거주하는 환경과 같은 환경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해저 환경은 부식성 산소, 습기 및 범프로부터 데이터 센터를 보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데이터센터를 잠수함 모양으로 만들어 바닷속에 집어넣는 나틱 프로젝트를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바닷물로 데이터센터의 설립 및 보존에 소비되는 열기를 식힐 수 있어 그만큼 전기 소비량을 줄일 수 있다는 급진적인 가설을 근거로 합니다.
캘리포니아 앞바다의 잔잔하고 얕은 바다에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의 1단계 프로토타입을 배치했습니다. 이것은 건조한 질소로 채워져 있고 얼음으로 뒤덮인 북해의 고르지 못한 조수를 견뎌내도록 강철 실린더에 단단히 포장된 덩어리였습니다. 105일 동안 작동하여 타당성 여부를 모의 실험한 뒤 현재 2단계는 물류, 환경 및 경제적 측면에서도 실용적인지 여부를 연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2단계에서는 해군 방위 및 해양 재생 에너지를 전문으로 하는 프랑스 산업 그룹인 Naval Group과 협력했습니다. 이들은 선박 설계 및 제조를 주도했습니다. 선박의 주요 설계 사양 중 하나는 기존 물류 공급망을 최적화하기 위해 기차 및 트럭으로 보급품을 이동하는 데 사용되는 표준 화물 컨테이너의 대략적인 치수를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계획한 대로, Naval Group은 잠수함을 냉각하는 데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열교환 프로세스를 사용하여 데이터 센터 내외부 파이프를 통해 해수가 각 서버 랙 후면의 라디에이터를 지나도록 순환시키고 다시 바다로 배출했습니다. 이들은 이러한 일종의 프로토타입 실험을 통해서 제조 및 배포 가능한 표준 해저 데이터 센터 모델을 최종적으로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런데 바다에 무엇이든 넣을 때마다 생물 오손이라는 과정이 발생합니다. 미세한 박테리아의 코팅이 며칠 안에 나타나고 유기체는 그 코팅에 달라붙습니다. 자그마한 유기체들이 배의 마찰 저항을 높여 배의 속도를 늦춥니다. 따라서 선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량을 증대시킵니다. 해조류, 따개비, 말미잘과 같이 선박에 부착하는 생물과 유기물 막의 형성속도를 제어하고자 많은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데이터 센터를 물에 처박아 물고기가 모여드는 인공 산호초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이, 따라서 생물 다양성을 증진할 수 있다는 말이 해저 데이터 센터의 구축에 근거를 부여하고 있기도 합니다. 자그마한 유기체의 침범과 거대 선박의 공존, 선박 형태의 데이터 센터가 약간의 열을 방출하더라도 주변 물을 데우기에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예측. "해저 전력 케이블에서 유사하게 발견되는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의 온난화만이 발생합니다." 그들은 수중 데이터 센터가 육지의 데이터 센터를 대체하는 것으로 보기보다는 고객에게 친환경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추가 제품으로 봅니다.
수족관의 크기에 맞춰 물고기는 성장을 멈춥니다. 하지만 생장합니다. 생장과 분열, 증식. 가만히 머무르는 듯 보이지만 내부의 증식은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크고 무거운 물건은 크고 무거운 프로세스를 산출합니다. 프로세스는 비용을 수반합니다. 예를 들어,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것을 들어 올리거나, 그것이 놓일 공간을 마련해야 하고, 그것을 돌볼 조직이나 기관이 필요하고, 그것의 가치를 뒷받침할 수 있는 기술과 하부 구조를 유지하는 비용을 수반합니다. 마찬가지로 큰 장소는 때때로 사물을 성장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규모에든 걸맞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면 또 아무런 능력이 없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 기관과 사업체의 요구와 입장에도 부합하지 않아 어디에서도 초대받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호의적이지만 또 그 결과로 이 목소리는 어떠한 비용도 지불할 수 없습니다.
추락하는 남자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남자는 돌이켜봅니다. 어느 시점부터 자기 죽음이 확정되었는지. 계속해서 거슬러 올라갑니다. 커피를 달라고 하자 콜라냐고 되묻는 승무원. 다시 한번 커피를 달라고 하자 승무원은 콜라를 건넵니다. 그는 마스크 때문이라 여기기로 합니다. 일반적으로 500개 정도 되는 좌석 수만큼 치킨 오어 비프라고 살가운 미소와 함께 물으면 새로운 땅에 다다르게 되는 그녀. 그렇게 불만을 도로 삼킬 때부터 그는 죽었던 걸까요? 폭발과 함께 산산이 조각난 몸은 몇 초의 시간이 지난 뒤 바닥에 후드득 떨어져도 애초에 다발로 찢어지던 순간으로부터 달라진 게 없어요. 영혼의 존재와 그것의 지속 여부, 판결의 시점이 무어라고 아무리 따져봐도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수렴되지 못한다면 결국 소용없는 논쟁이 아닐까요?
토끼굴이 계속해서 이어지기만 한다면 그것의 직경이 변화하고 또 그것 사이의 간격이 변주된다 한들 어떤 반전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뒤를 돌아볼 수는 있어도 걸어 나오기는 불가합니다. 아니, 뒤를 돌아보는 게 아니라 위를 올려다보는 게 맞겠죠. 창문으로 이웃집과 풍경을 내다보듯이 그저, 혹은 소파에 파묻히듯 앉아 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문화 행사 소식을 수혈받는 것만큼이나 무력하기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중력에 의해 당겨질 뿐이니까요. 환풍구는 자빠지고 떨어지는 경로가 아니라 복도여야만 합니다. 양방향으로 뚫린, 각각의 끝이 또 시작이고 각기 다른 경로로 이어지도록 엮인 다발이어야 합니다.
밖에서 누가 이토록 큰소리를 쳐대는 건가요?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말하는 건 쉬워요. 그렇게 자꾸 당위를 만들어내야 껍데기가 말라비틀어진 현실이 돋보이니까요. 여기 고해소는 참 아늑하고 좋아요. 저 환풍구 바깥의 낄낄대는 아줌마들만 없으면 완벽할 텐데요.
강철 압력 용기, 열교환기, 서버 및 기타 모든 구성 요소는 재활용이 가능합니다. 모든 충격이 부력으로 인해 상쇄됩니다. 모든 실험이 끝나고 난 뒤 해저 환경은 원상 복구될 것입니다. 해저 데이터 센터의 모든 부품 머터리얼은 데이터 센터의 수명이 다하고 난 뒤의 재활용 프로세스를 고려해 선택되었습니다.
2단계 실험이 끝나고 지상으로 올라온 수중 데이터 센터에 달라붙은 해양 생물들을 떼어내는 데만 하루가 꼬박 걸렸습니다. 질소로 채운 밀폐된 서버 장비가 내뿜는 열기와 가스로 가득한 내부는 놀라울 정도로 깔끔했습니다. 질소는 산소보다 부식이 덜하기 때문입니다. 일부 오작동, 고장도 있었는데 지상 데이터 센터와 비교하면 고장률은 1/8 수준이라고 여겨집니다.
현재 단계에 이어 Microsoft는 곧 프로젝트의 세 번째 단계에 진입할 예정이며, 이 단계에서는 서버의 수명 주기를 추가로 연구하고 검증하는 데 중점을 둘 것입니다.
지상의 노동자들이 불을 끄고 퇴근하면 밤새 가동되는 공장의 로봇팔처럼, 데이터 센터 역시도 10년 정도 되는 실행 수명 동안에 계속해서 가동됩니다. 자리에 아무도 없는 소등 상태에서 탄력적으로 근무합니다.
글로벌하다고 추정되는 특징은 또 다른 지엽적인 것이 되고 매우 비대해집니다. 끊임없이 확장적인 가설을 늘어놓기 전에 다시 한번 우리가 담겨 있는 상자를 돌이켜 봅시다. 우린 분명히 중력의 영향을 받고 있고, 화성이 아닌 지구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밟고 선 땅의 머리 위로는 반구형의 하늘이 있고, 우린 공기를 들이마십니다. 또 자기 통제적인 특징을 가지는 지구의 생물권 안에 속해 있습니다. 인간이 위치하는 위계에 대한 논의는 미뤄두더라도 우리가 적어도 지구에 속한 존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물론 외부 요소를 끌어오지 않으면 이제 자원은 고갈되고 모든 것이 끓어올라서 아지랑이로 피어오르겠지만, 닥쳐온 위기 앞에서 모두가 나팔만 분다면 세상은 소음만 가득해져 귀가 들리지 않고 눈이 먼 사람들만이 건설적인 노동력을 유지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이어져 있다." "모든 것이 일어날 수 있다." "모든 것이 공유되고 모든 이가 참여할 수 있다." 이러한 범용성은 우리가 붙박여 있는 존재임을 직시했을 때 부서집니다. 모든 것이 이어지고 어디든 다다를 수 있게 하는 글로벌 통신은 도로와 다리, 댐과 같은 물류 시스템 없이는 흐를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국가는 글로벌 통신과 그것의 하부구조에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붓습니다.
어째서 당신을 아주 모를 때보다, 지금 더 당신을 신뢰할 수 없는 걸까요?
그녀의 목마름을, 충족될 수 없는 불만족을 착취하세요. 그녀는 호기심이 풍부하지만 동시에 신중하니까.
이 음악에 전문적인 용어를 갖다 붙이기에는 턱없이 모자라고 무지한 채로 말을 덧붙이자면 이건 종이에 떨어지는 물방울이에요. 편지에 물이 방울져 떨어져 잉크를 번지게 해요. 하지만 전혀 더럽거나 지저분하지 않습니다. 불쾌한 구석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만 설탕으로 빚어진 인형처럼, 그런 신부와 그런 신랑처럼 장식으로서 미소짓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규범 위에 지어진 성지에 사니까요.
우리가 끈질기게 환상으로 삼던 가난이 실제로 닥쳐왔을 때 음침한 곰팡내를 풍기는 침상 밑에 누워서 나는 끝없는 책임과 죄의식을 느꼈습니다. 그러한 감각이 지금까지도 되살아나서 결코 익숙해지지 못할 고통을 선물하는 것도. 휴가를 즐기기 위한 완벽하고도 결함 없는 키트를 꾸려서 산과 바다의 장점을 두루 갖춘, 동떨어진 휴가지로 떠난다고 한들 우리 사이에 별다른 이야기는 펼쳐지지 못할 것입니다.
8월.
계속해서 죽고 싶다고 발가벗고 몸을 품 안에서 길게 늘어뜨렸습니다. 팔다리가 너무 길어서 품 바깥으로 삐져나갑니다. 우리의 유약함에 진이 빠져 나는 그에게 바닷가 도시로의 이사를 권유합니다. 여전히 지렁이는 자기에게 걸맞은 끈적대고 창이 없는 최저가 방을 고릅니다. 복도에는 지나칠 때마다 눈을 찡긋대는 아저씨들이 그득합니다. 기울어진 벽을 세 번만 지나면 도보로 십 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해안이 있었고 이제 그 아이는 수영도 할 수 있었고 해도 잔뜩 쬘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물놀이에 동참하지 않습니다. 내 안에 잘게 쪼개지고 분화된 물줄기가 어떻게든 섭리대로 흐르고자 서로의 땅을 찌르고 넘나들고 있었습니다. 그의 등장은 거기에 크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거인같은 발자국을 찍어눌렀습니다. 어느 섬나라 건국 신화에 나라를 둘러싼 제방의 범람을 막아낸 우량아의 주먹이 있다면, 그의 경우에는 이제 주먹을 잡아빼서 물줄기를 터뜨리는 일종의 역학이 있었습니다.
정체가 불분명한 자동차가 집 앞에 너무 오래 주차되어 있습니다. 누구도 차에서 나오거나 들어가지 않습니다. 집으로 날아오는 모든 우편물이 열렸다가 셀로판테이프로 엉성하게 다시 봉해져 있습니다.
의심을 숨기는 한 가지 방법은 산발적이지만 강렬한 박해를 통해 편집증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의심이 당신을 습격하는 방식은 무작위의 반대급부에서 성과를 거두기 때문입니다. 강렬함이란 산발적인 현상과 그에 선행하는 인과 관계에 대한 직조를 바탕으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릅니다. 그것은 확신의 형태를 띱니다. 그것은 의구심만큼이나 서서히 손을 뻗칠 수 있습니다. 권위라는 마수는 성별이나 나이 듦의 상대적인 정도, 혹은 일시적인 주인됨 따위의 요소를 기준 삼아 고정적 지위를 획득하게 될 때에 연약성을 잃고선 그저 추해집니다. 미생물이 자라지 못하게 화학 약품에 절이고 박제한 뒤 핀으로 꿰어 고정합니다. 불리한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우발적으로 일어났건, 눈이 멀 정도로 감탄스러운 전략이었든지 간에, 승화되어 다른 물질로 거듭날 가능성의 상실을 전제합니다. 빠져나갈 구멍은 가로막힙니다. 블라인드는 감아올려 지지 못합니다. 창살은 회전하지 못합니다. 주름진 원단이 기능을 잃습니다. 이제 방의 조도를 조절해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하거나 반쯤 드리워진 그림자로 반전을 꾀하려는 시도는 먹히지 않습니다. 햇빛은 당신과 그녀의 피부 결을, 벌어진 모공을 낱낱이 드러냅니다. 그녀는 지체없이 자리를 뜹니다. 핸드폰 화면이 이상하게 눌리기 시작하고, 명세서엔 두 배나 되는 요금이 청구됩니다. 텔레콤에 문의하면 상담원은 웃음을 참느라 씰룩대는 소릴 냅니다.
언젠가 교토의 유서 깊은 사창가를 걷다가 그곳의 집들은 입구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모두 여닫이문으로 되어있지만, 꽁꽁 닫혀 빛이 한 줄기도 새어 나오지 않고 있었죠. 고급 자재에, 가시가 튀어나오지 않게 적당한 수준으로 샌딩이 되어 있는 목재 표면처리에서 과연 유서 깊은 장인의 향기를 느낄 수가 있었죠. 그 주변에는 잘 가꾸어진 묘목이 미니어처처럼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고 얇고 뾰족한, 어두운 초록색의 이파리들이 적당한 습도를 머금은 채 신선하게 사랑받고 있는 듯 보였죠. 그리고 무엇보다, 멈춰서서 들여다보면 빗살의 기울기 때문에 안쪽이 꽉 막혀 보이질 않았어요. 아, 배타성의 달콤함이란! 곁눈질하듯이 지나쳐가며 봐야 겨우 안쪽이 아른거리며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그래봤자 그 안에 있는 게 사람인지, 가구인지, 그런 실루엣도 알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이 벽은 장막이나 연극에서 쓰이는 가림막 같은 게 아니었어요. 안에 이것저것 살림살이가 분명히 있다는 것은, 그래서 분명히 거기 누가 살고 있다는 것은 눈치챌 수가 있었죠. 이런 식이라면 대체 어느 누가 용기를 내서 문을 밀고 들어갈 수 있을까요? 다만 시기심만 유발할 뿐이었어요.
배가 젖은 짐승 한 마리가 다가와 발목을 핥습니다. 나는 행여 개를 발로 걷어찰까 두려워 놀란 마음을 급히 거두어들입니다. 그보다도 먼저, 거의 무의식적으로 나는 개의 주인을 찾아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렸습니다. 왜 사람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게 될까요? 사회적 소속이나 지위 외에도 개인적인 헌신의 대상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인데요. 달콤한 휴식 자리를 기꺼이 내어주는 비밀스러운 결탁이. 신선한 그늘을 드리우는 날갯죽지의 주인이.
2021년.
발렌타인 데이를 기념해 장미 한 송이를 선물 받고 나는 그만 아연실색합니다. 네덜란드의 한 온실에서 자라나 비행기를 타고 온 장미는 2.5 kg (5.5 lbs.) 만큼의 이산화탄소를 방출했습니다. 장미 한 송이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배달됩니다.
세상이 너무 요란하다는 이유로 한 친구는 거대한 팩스를 해외 직구한 뒤 팩스를 빼내고 남은 거대한 종이 박스 안에서 며칠을 살았습니다.
경치 좋은 도시의 언덕배기로 다다를수록 집값이 저렴해졌던 탓에 그는 언덕의 꼭대기에 살았고 거기에는 대중교통이나 차로도 없었습니다. 만약 그가 종이 박스 안에서 도움을 요청하더라도 누구도 그를 구하러 가파른 언덕 위로 올라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며칠 뒤 친구는 제 발로 자기 성에서 나와 도로 접어 분리 배출했습니다.
한 해안 도시 지자체에서는 신재생에너지 정책의 일환으로 가정마다 방문하여 기울어진 태양열 패널을 설치해주었습니다. "태양이 떠 있고, 바람이 불 때, 도시는 더욱 열심히 일할 것"이라는 정부의 야심 찬 운영 전략이었습니다. 할머니들은 그 아래에 고추를 엮어 말렸습니다. 응달이면서도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이 고추 말리기에는 제격이었기 때문입니다.
허물어져 가는 전각의 2층에는 신발 가게가 있었습니다. 어쩌다 이 건물에 이르게 된 건지는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지만 1층에 입점한 가게에 들르려다 이내 흥미를 잃었던 것 같습니다. 빈칸을 모두 숨 막히게 채울 필요는 없으나 개연성을 위해서는 흙냄새가 풀풀 풍기도록 구역대며 말을 지어낼 필요도 있는 것입니다.
여차여차해서 2층으로 올라가자 늙은 신발 공이 낡은 엽총 컬렉션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이를 눈치채게 된 연유가 더 우스꽝스럽습니다. 포스터나 벽 장식 같은 게 덕지덕지 붙은 곰팡이 벽에 음험한 구멍 같은 게 뚫려있었습니다. 이 구멍을 들여다보자 잠수함처럼 공간이 뒤틀려 수렴되었습니다. 구멍 안에는 색색깔이 스쳐 가는 건 보였지만 구멍이 너무 작은 나머지 주변 풍경이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무언가 살아있는 대상이 스쳐 지나가면 그 맥락을 파악하기는 힘들었습니다. 노인은 자랑스럽게도 여기서 방아쇠를 당기면 정확히 무슨 거리의 어느 모퉁이에 위치한 건널목의 몇 번째 줄무늬를 지나쳐가는 사람의 발목을 쏘는 거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 사람은 쓰러지고, 차들은 멈춰서고, 교통경찰은 수 분 안에 출동한다고요. 행인들은 순간의 양심에 치여 그를 불쌍히 돌아보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란 겁니다. 소동은 소동으로 기억될 뿐이고 액션 활극은 되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주인공은 그저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에 맞아 쓰러질 뿐인걸요.
그래서 그렇게 되면 세상에는 신발이 한 짝 더 필요해지고 따라서 이 구진 전각에 나 같은 손님이 찾아오는 거랍니다. 어느새 나를 "예약 손님"이라고 부르면서 차를 따르고 특별 대접을 해주는 노인의 재빠른 움직임에, 그 깃털같이 가벼운 몸동작과 굳센 확신에 나는 그만 아연실색하고 말았습니다.
.. 그리고 핑, 전 세계 인구 절반은 해안가로부터 200km 안쪽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착안해 출발한 이번 실험에서 해안 가까이 데이터 센터가 위치한다면 물리적 거리는 줄이고 전송 속도를 향상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개발 도상국이나 극지방과 같은 무정부 지역에서부터 실효성 있는 전략이 구체화될 것입니다.
이 얄팍한 가짜들, 임무를 수행하는 민달팽이들
모퉁이에서 나를 만나, 어깨를 두드려 줘
그리고 잊어줘, 용서하지 않기 위해
나를 용서해, 잊지 않기 위해
부드럽게 문지방을 부수어
여전히 마킹할 수 없지만서도 정답을 알도록